[데스티니 가디언즈] 해변 추락

베르테민-1은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죽지 않을 수도 있구나.
하기에 엑소더스의 안전장치도 살아남았는데 자기라고 그러지 않는 경우가 있지 않을 법이 없다. 그래도 대부분 타 죽으니깐 - 그리고 실제로 많은 경우가 그랬으니 자신도 당연히 언제나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굴의 보호판은 이미 추락 진전부터 여기저기 흔들리는 선체에 부딪혀 금이 갔고, 통각 센서는 이미 과부하되서 탄내를 낸 지 오래였다. 귀환할 때 헬멧을 쓰는 버릇이 오늘 하루 즈음은 나오지 않아도 괜찮았을텐데. 방어구는 껍데기만 남고 그 껍데기는 안에 받혀입은 다 타버린 옷들 위로 눌어붙어 몸을 움직이려면 몸의 철판들을 떼내야 할 텐데 그러면 전선줄덩어리가 그대로 노출될 것이다.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는 로그들은 아까까지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친절하게도 알려주었다. 죽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통곡할 일이었다.
크레소-11이 그의 참새와 더불어 우주선을 불법 개조해줄 때 어땠더라? 추락 위험이 더해진다고 말했던가? 말해주지 않더라도 불법개조를 하면 일반적으로 너무 과도한 장식적 하중에 선체가 비정상적으로 무거워지거나, 아니면 너무 실용적으로 맞춘 탓에 가벼워져 폭발 위험이 커지는 것. 둘 중 하나는 무조건적으로 감수해야했다. 그의 탓이겠는가. 베르테민의 탓이겠지. 분명 어땠더라, 엔진 과부하 한도를 해제하는 개조였던가? 그렇다면 연료탱크 쪽 쿨러가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 날아가서 지금 이 모양이 된 것이겠다. 참새 개조를 받아보고 나서 꽤 괜찮게 운용하곤 크레소의 개조가 이 정도라면 우주선도 가능하겠다 생각한 게 안일했다. 베르테민은 남은 미광체가 아직 남아있으니 싼 보급형으로 하나 장만해서 새로 부탁해야겠다 생각했다. 오래 쓰던 게 아니라 새 것이니깐 좀 더 낫겠지. 그는 수호자 생활 시작때부터 함께해온 우주선이 공중분해되버렸다는 충격은 의외로 받지 않은 모양이었다.
손가락부터 발목, 그 다음은 허리. 목까지 한번씩 관절을 돌려봤다. 무릎 관절은 거의 박살이 나서 통짜가 되었지만 박살을 낸다면 얼추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다음에 걷는 걸 유지할 때 계속 주저앉겠지만 참새 위에 올라타면 그럭저럭 괜찮을 것이다. 반쯤 누운 자세가 되어서 균형 잡기는 평소보다 더 어렵게 되겠지만. 몸통 판에 옷 위에 눌어붙은 방어구가 거치적거렸다. 자신이 타이탄이 아니어서 다행인 적이 이렇게까지 없었다. 가죽 로브와 팔 쪽 방어구만 들러붙어 타버린 것도 이렇게 불편한데 가슴이나 무릎에까지 이런 게 들러붙어 있었다면 지금 꼼짝도 못하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누워만 있었겠지.
시야의 이변을 알아챈 건 그 때였다. 헬멧이 들러붙어 빠지지 않는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금 간 보호판 사이로 아주 일부의 시야만이 보였고 바깥의 소리는 청각 센서에 들러붙은 강화 플라스틱 덩어리때문에 먹통이었다. 그나마 멀쩡한 손관절을 부숴먹게 생길지도 모른단 생각과 함께 목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손 마디마디에 힘을 주자 바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목과 헬멧 사이의 틈으로 보호판 조각들이 떨어져내렸다. 카득- 카드득, 들러붙어 떼어지지 않는 헬멧의 바깥을 쥐고 있던 손가락들이 자꾸 옆으로 헬멧을 부수며 빠져나왔다. 목 부분만 부숴지고 턱 위쪽부터는 그대로였다. 참새를 소환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베르테민은 그 앞에 불법 개조로 달았던 장식들에 머리를 부딪혔다. 당장 리부팅이 필요한 엑소마냥 그가 참새의 장식 위에 목 관절이 분질러지라 머리를 내리쳤다. 횟수를 세는 걸 포기했을 때, 머릿가죽이 통째로 벗겨지는 섬뜩한 느낌과 함께 그대로 부드러운 바닥에 코를 박았다.
"커헉."
전류가 통하는 느낌과 함께 제정신이 바로 번쩍 들었다. 고운 입자들이 다음 순간 쓸려나가는 느낌. 철썩거리는 마찰음. 엉겨붙어 부서진 보호판 사이로 너무 많은 빛을 갑자기 받고 있는 주황색 LED가 지직거렸다. 줄을 놓은 사람마냥 그대로 턱 관절이 떨어졌다. 바닷물이 아직 전선줄 사이로 합선 스파크를 내며 천천히 줄줄 떨어져내렸다. 흐린 오후 4시 경의 하늘 저 멀리 제 우주선이 남긴 검은 연기 자국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해변에는 부서진 냉각 팬들과 폭파한 배기구 파편들이 쓸려오고 있었다. 그제서야 제 고스트 생각이 났다.
"호마스, 호마스? 계십니까?"
베르테민이 회복 대신에 깊고 깊은 한숨과 잔소리 한다발을 얻게 되는 건 약 15분 후였다. 구조대는 그로부터 약 2시간 후에야 볼 수 있었다.